레퍼런스 폴더가 2GB를 넘은 날
- 05 Dec, 2025
2.14GB
오늘 아침에 폰 저장공간 알림이 떴다.
“저장공간이 부족합니다.”
확인했다. 사진 폴더 용량이 2.14GB다.
전부 레퍼런스다.

습관
좋은 콘텐츠를 보면 캡처한다.
틱톡 보다가. 인스타 보다가. 유튜브 쇼츠 보다가.
“이거 레퍼런스 된다.”
화면 캡처 버튼 누른다. 저장한다.
출근길 지하철 30분에 20개 캡처.
점심시간에 15개.
퇴근길에 또 30개.
하루에 최소 60개다. 한 달이면 1800개.
4년 하면… 계산 안 해본다.
폴더 구조
처음엔 정리했다.
“숏폼_레퍼런스” “릴스_참고자료” “썸네일_아이디어”
폴더 만들고 분류했다.
3주 갔다.
지금은 전부 카메라 롤에 섞여있다.
어제 저녁 먹은 사진. 지난주 회의 화이트보드 사진. 2달 전 본 틱톡 캡처.
전부 한 폴더다.

아이러니
회의 중이었다.
“저번에 본 그 레퍼런스 있잖아요.” “뭔데?” “그거요. 후킹 엄청 강했던 거.” “어디서 봤는데?” ”…폰에 캡처해뒀는데.”
스크롤 시작했다.
5분 지났다. 못 찾는다.
“나중에 찾아서 공유할게요.”
회의 끝났다. 30분 더 찾았다.
안 나온다.
분명 있다. 봤다. 캡처했다.
어디 갔지.
창의성의 저주
동료가 물었다.
“너 레퍼런스 엄청 모으지?” “응.” “근데 진짜 다시 봐?”
대답 못 했다.
돌아와서 생각했다.
지난달 모은 레퍼런스 200개. 실제로 다시 본 건 5개.
2.5%다.
나머지 195개는 그냥 저장만 했다.
“나중에 볼 거야.” “언젠가 쓸 거야.”
거짓말이었다.

검색의 한계
레퍼런스를 찾는 방법은 두 가지다.
- 날짜로 찾기
- 스크롤로 찾기
날짜는 기억 안 난다.
“3월쯤… 아니 2월?”
스크롤은 끝이 없다.
2천 개 사진을 다 내린다. 손목 아프다.
결국 포기한다.
“그냥 다시 찾아보지 뭐.”
틱톡 켠다. 30분 본다.
또 레퍼런스 10개 캡처한다.
악순환이다.
동기화의 배신
노션에 정리하기로 했다.
“이번엔 진짜 체계적으로.”
페이지 만들었다.
- 숏폼 레퍼런스
- 후킹 강한 영상
- 편집 스타일
- 사운드 활용
- 릴스 레퍼런스
- 썸네일 아이디어
페이지는 예쁘다.
안에 내용은 3개다.
작성일: 3주 전.
진짜 문제
문제는 캡처가 아니다.
문제는 소화다.
좋은 콘텐츠를 보면 흥분한다.
“이거다! 이 느낌!”
바로 캡처한다.
그리고 잊는다.
3초 전 흥분은 사라진다.
다음 콘텐츠로 넘어간다.
뇌가 처리할 시간이 없다.
인풋만 있고 아웃풋이 없다.
팀장 조언
팀장이 말했다.
“콘기획아, 레퍼런스 적게 봐.” “네?” “많이 보면 창의성 떨어져.”
이해 안 갔다.
“레퍼런스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
팀장이 웃었다.
“레퍼런스는 영감이야. 답안지 아니고.” “영감은 3개면 충분해.” “나머지는 네 머릿속에서 나와야지.”
돌아와서 생각했다.
내 기획안에서 내 생각은 몇 %일까.
실험
일주일 동안 캡처 안 하기로 했다.
첫날.
좋은 콘텐츠 봤다. 손이 근질근질하다.
참았다.
대신 노트에 적었다.
“후킹: 첫 1초에 질문 던지기” “편집: 0.5초마다 컷 전환” “사운드: 트렌딩 사운드 + 자막 강조”
3줄이다.
캡처보다 기억에 남는다.
둘째날.
또 좋은 거 봤다. 또 적었다.
“스토리텔링: 실패담 → 극복 → 교훈” “썸네일: 놀란 표정 + 큰 텍스트”
2줄이다.
그런데 회의에서 바로 설명할 수 있었다.
캡처본 찾을 필요 없었다.
깨달음
레퍼런스는 도구다.
많이 모으는 게 목적이 아니다.
잘 활용하는 게 목적이다.
2천 개 레퍼런스를 안 보는 것보다 5개 레퍼런스를 제대로 분석하는 게 낫다.
저장은 쉽다. 소화는 어렵다.
캡처는 1초다. 이해는 10분이다.
정리
오늘 폰 용량 정리했다.
레퍼런스 폴더 2.14GB.
전부 삭제했다.
손이 떨렸다.
“나중에 필요하면 어떡하지.”
그래도 지웠다.
삭제 완료.
1.89GB 확보.
속이 시원하다.
필요한 레퍼런스는 다시 찾으면 된다.
찾아지지 않으면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던 거다.
새 규칙
레퍼런스 캡처 규칙을 만들었다.
- 하루 5개까지만
- 캡처하면 바로 1줄 메모
- 일주일 지나면 삭제
- 정말 중요하면 노션에 분석글 작성
까다롭다.
그래서 좋다.
진짜 좋은 것만 남는다.
패러독스
콘텐츠 기획자의 패러독스다.
많이 보면 영감이 생긴다. 많이 보면 생각이 안 생긴다.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레퍼런스에 의존하면 안 된다.
저장하고 싶다. 저장만 하면 의미 없다.
균형이 필요하다.
인풋과 아웃풋의 균형.
지금
폰 용량은 여유롭다.
레퍼런스 폴더는 비어있다.
불안하다.
그런데 머리는 더 맑다.
어제 회의에서 기획안 발표했다.
“레퍼런스 있어요?”
“제 머릿속에 있어요.”
팀장이 웃었다.
기획안 통과됐다.
레퍼런스는 영감이지 답안지가 아니다. 2GB 삭제하고 나서야 알았다.
